사할린 한인의 운명 (귀한운동) - Page5


 사할린에서의한인귀한운동과허조

1958년에 일본으로 박노학, 이희팔, 심계섭이 일본인 아내와 함께 귀환할 때 박노학을 전송하러 나온 많은 친구들은 이별을 아쉬워하며 흐느껴 울면서

«일본에 들어가면 우리도 빨리 들어갈 수 있도록 힘써주게»라고 이구동성으로 부탁했다. 그때 사할린 한국인 중에는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일본

여자와 결혼했을 건데»라면서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지 10년 이상이 넘었는데 사할린에 독신 일본 여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동포들의 비참한 소리를 가슴 깊이 안고 후에 일본에서 박노학은 사할린 동포들을 귀환시키기 위하여 «가라후토 억류 귀환 한국인회»를 결성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할린 토마리 시에 거주하는 허조는 박노학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게 됐고 이곳 상황을 전했고 귀환자 명단을 작성하는데 힘을 썼다.

 

 

  허조는 1911년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허조는 5살에 할아버지로부터 한자

  천자문을  배웠고, 그 후 학교를 다니지 않고 한글과 일본어를 독학으로 터득했다.

  1945년 해방 후  사할린에서 조선학교에서 일할 때 러시아어도 독학하여 쓰고

  읽었다. 살림살이 어려우니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막벌이하러 떠났지만 빈궁을

  떠나지 못했다. 1940년에 사할린 (그 당시 – 가라후토)에 모집으로 들어와 토마리

  (그 당시 – 토마리오루)시 셀룰로즈 제지공장에서 일하게 됐다.  9명의 자녀들을

  데리고 아주 어려운 여건에서 살았다. 옷도 신발도 부족했고 식량도 부족해

  자녀들이 배를 곯았다고 한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자녀들을

  공부시켜 훌륭한 인재로 교양했으며 자녀들의 이름으로 우편저금까지 했다.

 허조씨가 사할린 주 교육청에 토마리 시에 조선학교를 세워달라고 요구했기에

 1946년 10월 15일에 조선학교가 개교됐다. 조선어 수업시간에 허조 교장은 애국가

  낭독과 태극기 그리기로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었다.

 다카키 겐이치 변호사의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허조의 글을 읽어보고 흥분했으며 그

  후부터 자기도 사할린 한인 귀환운동에 적극 도와 나섰다.

1965년에 일본에서 박노학 “화태 귀환 재일 한국인회”를 걸쳐 그 해 6월에 열리는 한일회담에 허조가 사할린 잔류 한국인들의 귀환문제에 대한

탄원서를 보냈다는 것이다. 1965년 1월에 사할린 코르사코프에 거주한 김영배와 함께 허조가 사할린 내무서장과 면회하여 귀환을 요청한 결과

«일본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무국적 사할린 한인 들을 일본으로 귀환시킬 수 있다»라는 회답을 받았다. 이런 회답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귀환은 실시되지 않았고 소련 정부측도, 일본 정부측도 사할린 한인 귀환문제를 배제한 것이다.

허조는 계속 무국적으로 있다가 1976년 4월 18일에 오랫동안 중환을 앓다가 희망하던 고향 땅도 밟지 못하고 타계했다.

사할린에서 박노학에게 보낸 편지들은 처음에는 잘 들어갔고 회답도 잘 받았다. 그 당시 한국과 소련 사이에는 국교가 없었기 때문에 사할린의 조선

사람들과 한국에 남겨진 가족들은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없었고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박노학이 사할린의 동포에게 한국에서 받은 편지를 사할린에 보내면 그것을 받은 사람은 한국의 가족 앞으로 보내는 답장을 박노학에게 전달했다.

박노학의 가족이 그것을 개봉하여 새 봉투에 넣어 한국 주소로 우송했다는 것이다. «사할린에서 온 편지는 어느 것이나 눈물 없이는 읽지 못했다»고

박노학은 증언했다. 박노학을 사할린 동포 귀환 희망자를 확인하고 그들의 명단을 작성하는 데에 코르사코프 시에서 살고 있는 김영배와 도만상,

토마리 시에 살고 있는 허조가 적극 도와 나섰다. 사할린에 살고 있는 한인 동포들은 대다수 문맹자였기 때문에 편지를 써달라고 허조에게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무려 103통의 편지를 끊임없이 박노학의 «한인회»에 보냈고 때로는 감옥에 갇히면서도 굽히지 않고 진술을 계속했다.

토마리 당국의 해석을 듣고 모스크바 일본대사관에 편지를 보냈는데 다음과 같은 회답을 받았다:

소화 38년 8월 8일

허조 귀하

편지에 따르면 현지 소련 관헌이 귀하에 대해 일본측의 입국 허가만 얻으면 소련으로부터의 출국을 즉시 허가할테니 당 대사관에 대해 여권을

신청하라는 취지입니다만…… 종전 후 한국은 독립되고 이에 따라 한국인은 일본 국적을 이탈했기 때문에 귀하의 도일은 일본측에 있어 미귀환 일본인의

송환에 해당되지 않으며 또한 현재 외국인인 귀하에게 일본 여권을 발급할 수도 없습니다…... 순전한 한국인인 귀하의 영주를 목적으로 한 일본에의

도항을 신청해도 허가될 가능성은 없다고 사료됩니다.

(사할린 재판(갑) 제 77호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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