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 문제: 전후처리와 처우개선

1)머리말

 

   사할린 한인들을 논한다면 강제징용과 러시아 내 고려인의 이주를 빼놓을 수 없다. 사할린이란 특수적 상황도 일본시대 전후에 있어 화태

(가라후토)에는 이미 한인들이 이주해 있었다.

사할린이주의 정착배경은 필자의 저서에서도 밝힌 바 있었지만 개방(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전후 일본의 학술기관을 비롯해 르포작가라든지

홋카이도신문에서도 여러 번 보도한 바 있었다. 한국에서는 1995년 "해외희생자 유해현황조사 사업보고서"와 2003년 "일제하 피강제동원자 등

실태조사연구"로 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보고서에도 수록되어 있다. 보고서에는 사할린이주와 강제징용에 관한 정착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담고

있었다. 그 외에도 많은 학술지나 논문에서도 강제징용이라든지 사할린이주 및 영주귀국에 관해서 저술한 바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애초의 러시아 이주지역을 섬이 아닌 대륙 권으로 보는 것도 1884 년6 월25 일 조러수호통상조약을 시작으로 양국 관계가

맺어졌고 그 이전 1864 년부터 한인들은 러시아로 이주해왔다. 최초의 러시아 한인역사는 후자로 치면 149 년 전이고 전자로는 129 년 전이 되는

셈이다. 그만큼은 러시아와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한일합병 이후 독립운동가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곳도 러시아였다. 또한 현재와 같이 러시아가 기회의 땅으로 비춰지게 된 시기 역시

1896 년 고종과 세자가 일제의 압박을 피해 은신했던 곳도 러시아였다. 그래서 러시아는 먹고살기 위해 이주했거나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근원지로 최적으로 손꼽혔다. 이들은 러시아 대륙의 헐벗은 땅에 맨몸으로 와 민족의 얼을 지켜내기 위해 학교를 세우고 한글신문을 창간하고

항일운동자금을 마련하는데 일등공신의 업적을 남겼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조선이 국권을 강탈당하고 식민지 체제가 되자 러시아와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스탈린의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자 조선과의 관계는 남북관계의 사상적 이념이 돌출됐고 냉전체제가 지속되어 남한과는 1990 년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닫혀있는 상태가 됐다.

재외동포, 특히 동북아 지역의 재외동포 역사는 1910 년 국권을 상실하여 국외로 표류하고 강제 징용되어 체류할 수밖에 없었던 한민족 역사의

아픈 상처이다. 사할린 동포의 문제들 역시 이러한 일제 강점기 식민지 역사로부터 기인한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의 사할린 섬으로 강제동원된

4만 3천여명의 한인들은 1945 년 해방이 됐어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70 여년간 정든 고국과 지독한 생이별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리고 "잊혀진 70 년"이 가진 슬픈 숙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잔류한인 1 세 지원의 문제, 미래세대의 교육문제,

영주귀국의 문제, 역사청산 소송 등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된 사할린 한인의 역사회복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한국사회의 중대한 과제들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일본 정부의 책임회피 속에서 사할린 한인들은 러시아 땅에서 철저히 소외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사할린 한인의 역사는 일제 식민지하 많은 한인들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 되어 종전 후 고국으로 귀환 하지 못한 채 사할린에 억류되면서

비롯됐다. 1937 년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여 1939 년부터 약 150만 명의 한국인들을 모집, 관 알선, 징용형식으로 강제연행 또는 징용했다.

이들 한인들은 온갖 멸시와 차별을 받으면서 철도부설, 비행장 건설, 탄광 노동현장에서 노동력으로 착취당했다. 종전 후 사할린에 있었던

일본인들은 전원 일본에 귀환했으나, 한국인들은 일본 정부의 국적 상실한 이유로 귀환거부로 한국에 귀환하지 못하고 사할린에서 억류하게 됐다.

사할린 한인  귀국의 본격적인 대두는 1988 년 소련 정부의 서울 올림픽참가를 계기로1989 년 소련과 한국 양국 정부가 사할린 한인 의 한국방문

및 영주귀국 사업에 합의함으로써 영주귀국이 시작됐다. 한편 1994 년 4 월 한·일 양국정부는 사할린 귀환 동포의 정착시범사업을 실시하기로

합의하고, 한국 정부는 1996 년 국무총리주재 재외동포 정책위원회에서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사업에 대한 대책이 마련됨에 따라 1999 년 아파트

489 세대와 100 명 수용규모 요양원이 완공됨으로써 사할린 영주귀국이 실시되게 됐다.

현재 4천 여명이 국내거주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은 고령으로 경제문제, 건강문제, 사할린에 남겨둔 가족문제, 외롭고 힘든 고국생활에 적응문제

등을 안고 있다. 그러나 영주귀국 사업이 20 년이 되어가고 있지만, 사할린 한인의 생활실태와 적응에 관련된 공식 조사는 2001 년 489 세대가

입주한 안산 고향마을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시설유형별 비교조사는 물론이고 체계적인 기초실태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사할린 영주귀국동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문제는 크게 사할린 한인 문제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방안에 대한 관심 부족이라 할 수 있으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 대한 소극적 대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사할린 영주귀국동포지원에 대한 법적 기준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지원을 강요한다.

이에 본 연구는 1989 년 이후 고국으로 귀환한 사할린 동포의 한국 내에서의 생활실태와 만족도를 파악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사할린 귀국동포의 생활실태와 귀환한 동포들이 처해있는 생활상의 문제점을 파악한다.

둘째, 사할린 영주귀국동포의 고국생활에 있어서 생활만족도를 측정하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다.

셋째, 한국 사회와 국가가 이들을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이며, 그리고 이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결국 사할린 귀국동포의 역사적 삶을 이해하고 한국생활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여 보다 안정되며,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에게는 사할린 한인에 대한 종합적 문제해결을 위해 사할린 잔류 한인 문제, 미래세대 교육문제, 역사청산 소송 등의 문제에

대한 지원대책과 관심을 제기하고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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