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한인 문제: 전후처리와 처우개선 - Page 7

 

(4) 사할린한인의대량학살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본왕은 라디오로 일본의 패전을 공포했다. 이를 들은 일본인들은 죄없는 조선인들에게 화풀이를 했다.

소비에트군의 공격병 중에 조선인들이 있다는 소문이 흘러들기 시작했다. 사실 이것은 오로크, 길랴크, 니브히등의 사할린 토착민들이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조선인들은 러시아인들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고 이 «개»들이

그들을 도울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의 간첩들이다. 그들을 죽여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죽였다. 

진격해오는 소비에트군을 피해 일본군은 모든 것을 불태워 없앴고 쌀이며 다른 음식물을 진흙에 뿌리고 저수지에 석유를 부었다.

2012년8월15일 1940년대 소련 정부가 일본이 사할린 조선인들을 대량 학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보고서를 포함해 사할린에 강제 동원됐

조선인들의 역사가 담긴 희귀 동영상과 사진 등이 공개됐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 조선인을 대량 학살했을 것이라는 소련 정부의 보고서가 입수됐다. 그동안 밝혀진 일본의 사할린 조선인

학살은 수십명 정도의 사례뿐이어서 이번 보고서 공개를 계기로 당시 일본의 만행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대량 학살의 증거와 함께

일제에 의해 사할린에 강제동원된 1,2천 여명의 명부도 공개됐다. 한국 국가기록원이 러시아 사할린 국립문서보존소에서 입수해1946년 소련

정부의 인구 보고서 초안에는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의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대량 학살 가능성이 언급돼 있다. 보고서 초안은 한 장짜리 질

나쁜 시험지로, 19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러시아 민정국 인구조사담당자가 직접 손으로 썼다. 이 담당자는 보고서 초안에서 전쟁 전에는 사할린

에스토루 지역에 조선인이 1만229명 살았는데, 전쟁이 끝난 후에는 5천332명으로 인구가 감소한 이유로 피난이나 귀환에 따른 인구이동과 함께

"일본군국주의자의 조선인 살해"를 꼽았다. 정확히 몇 명이 언제, 어떻게 살해됐는지는 문서에 나와있지 않다. 기록원 김갑섭 기록관리부장은

"사할린 지역에서 귀환한 사람들이 일본군의 학살이 있었다는 증언을 많이 해왔는데, 그동안에는 근거가 없었다"면서, "일본군이 사할린에서

한인을 학살했다는 근거가 외국 정부의 보고서에 적시됐다는 점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나온 근거를 토대로 추가자료가 있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방일권 교수는 "그동안 사할린 한인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아버지나 친척이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증언 등 광범위한 민간인 살해

이야기가 떠돌았는데 기록이 없었다"며 "그러나 19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소련 정부 민정국 담당자가 일본 군국주의자의 사할린 한인 살해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민간인 살해라는 비인도적인 처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졌다는 증거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방 교수는 "일본군의 한인

대량학살에 대해 더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려면 재판이나 조사기록 등을 추가로 확보해야 할 것"이라며 "학살관련 기록은 남아있기가 어려운데,

정보계통이나 군계통에 관련기록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의 사할린 조선인 학살은 1945년 8월 21–23일 일본 헌병과 경찰이 사할린 가미시스카

(현 레오니도보)에서 남성 19명을, 미즈호(현 포쟈르스코예)에서 임신부와 어린아이를 포함해 27명을 무차별적으로 해한 사례 정도가 있다.

가미시스카 사건 당시 일본 경찰은 조선인들을 경찰서에서 총살하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경찰서에 휘발유을 뿌리고 불을 지른 뒤 퇴각했다가

다음날 아침 현장으로 돌아와 타지 않은 시체를 찾아 석탄더미 위에 던져 완전히 태우는 등 잔학한 면모를 보였다.

가미시스카에 비석을 세우고 매년 제사를  지내려 대한민국에서 오는 서울시 주민 故김경순의 말이다:  "1945년 8월 18일 가미시스카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인 18명을 천막에 넣고 산채로 불을 질렀고 거기에 아버지 김경백(54)과 오빠 김정대(18)가 있었다. 사할린의 북쪽으로부터

소비에트 군의 공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일본 장교들이 한국인들을 소비에트군의 첩자라는 죄를 씌워 헌병대로 끌고 갔고 재판도 조사도 없이

천막에  넣고 불에 태워 죽였다".

크. 가포넨코가 또 다른 비극적인 사건을 이야기한다: "1945년 8월 20–23일 일본인들이 미주호촌에서 27명의 한인 주민들을 칼로 찔렀는데 그들

중에는 여자 3명과 아이들 6명이 있었다".

이는 소련군과 KGB 수사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한편, 국가기록원은 이날 사할린 한인 관련 희귀 기록물 공개 보도자료에서 일본군의 사할린

대량학살 가능성이 있다는 소련 정부 보고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기록원은 당초 이 내용을 포함해 보도자료를 내려 했으나, 한일관계가

민감해진 상황에 정부 차원에서 대량학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기가 부담스러워 최종 보도자료에서 뺐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