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의: 소련시대의 사할린 한인의 생활 (계속)

(2) 한국에서의노력

 

1964 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일회담에 제출할 귀환요청서가 제출됐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회담에서 사할린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조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이후 한국 정부는 냉전의 벽을 핑계삼아 사할린 한인들의 귀환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1966 년 2 월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외무부장관이 "공산지역(화태) 피억류교포 송환"에 관한 보고를 통하여 사할린 한인문제가 한국 국회에서 처음으로

거론됐다. 이어 1968 년 6 월 14 일 "사할린 억류교포 송환 촉진에 관한 건의안"이 의결됐다. 그 후 1970 년 8 월 이두훈 씨가 대구에서

"사할린억류교포귀국촉진회(1980 년 2 월 ‘중소 이산가족회’로 개칭)"를 결성하여 이산가족의 의견과 이익을 대변하고 이산가족 재회사업을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러한 활동을 조력하고자 1972 년경에는 일본에서도 "사할린억류귀환한국인회에 협력하는 아내의 모임"이 결성되어

일본내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사할린 한인들에 관한 관심과 정책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은 1980 년대 말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사할린 한인들의 피나는 노력과 그들의 일본에서의

승소, 일본 정부의 정책 전환 등에 힘입은 것이었다. 88 올림픽 개최와 북방정책의 채택, 그리고 소련의 변화 등으로 인한 정세의 변화는 한국 정부의 변화된

정책 실현을 가능하게 했다.

소련은 1988 년 9 월 이후 사할린 교민의 모국 방문과 영주 귀국을 허용했다. 이후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게 됐다. 1989 년 8 월 한국

정부는 사할린 주정부와의 실무접촉을 개시하고 교섭창구를 대한적십자사로 지정하여 협상을 전개했다. 10 월에는 한국의 이산가족 30 명이 처음으로

사할린을 방문하기도 했다. 1990 년 9 월 한러수교가 성사되면서 협상은 더욱 신속히 전개 됐다. 마침내 1992 년 독신 노인 72 명의 영주귀국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영주귀국 사업은 지속됐고, 안산시에는 고향마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2000 년부터는 1945 년 8 월 15 일 이전 출생자의 경우 일본 정부의 정착지원금을 받아 한국에 영주귀국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그 이후 출생자들의

문제는 여전한 현안으로 남게 됐다. 또한 영주 귀국자 이외의 현지 한인들에 대한 지원문제도 중요한 현안으로 남아 있다. 사할린 한인 지원관련 특별법

제정 움직임은 17 대 18 대에 이어 현 19 대에도 전해철 의원(민주당, 안산)이 발의한 상태다. 17 대부터 발의된 법안들의 주요 내용은 영주귀국 대상의

확대와 사할린 현지 생존 1 세들에 대한 지원이다. 외교부의 반대와 국회 상황(18 대 경우 한미 FTA 처리) 등으로 국회임기만료 폐지됐다. 19 대에 발의된

전해철 의원 법안 역시 외통위 수석전문위원이 부정적인 검토의견을 제출하여 통과여부가 불투명한 상태다. 이명수 의원의 법안은 현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의 상설화에 초점인 법안인데 현정부의 의지가 관건이겠으나 이 역시 어렵다고

생각된다.

[사할린 한인 지원특별법 입법추진경위]

 

법안명

제안일자

현재 상태

사할린 한인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장경수 의원등 62인)

17대 국회

2005.10.13.

2005.10.14. 소관위 회부

2008.05.29. 임기만료 폐기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및 정착지원에 관한 특별법안(한명숙 의원등 91인)

17대 국회

2005.12.30.

2006.01.09. 소관위 회부

2008.05.29. 임기만료 폐기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 및 정착지원에 관한 특별법안(김영진 의원등 29인)

18대 국회

2009.03.10.

2009.03.11. 소관위 회부

2009.07.20. 소위 회부

2009.11.23. 법안심사소위 상정

사할린 한인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

(이화수 의원등 10인)

18대 국회

2009.06.12.

2009.06.15. 소관위 회부

2009.07.20. 소위 회부

2009.11.23. 법안심사소위 상정

사할린 한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박선영 의원등 24인)

18대 국회

2010.09.06.

2010.09.07. 소관위 회부

영주귀국 사할린동포의 고국정착지원에 관한 특별법안

(이윤성 의원 등 12인)

18대 국회

2010.12.6

2010.12. 7 회부

 

2012 년 11 월 13 일 민주당 전해철 의원 대표발의로 "사할린 동포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이 해당위원회(외교통상통일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됐다. (의안번호 2549), 발의자로는 전해철, 임수경, 이상민, 배기운, 우윤근, 김성곤, 긴민기, 유대운, 서기호, 노웅래, 백재현, 김관영, 윤후덕,

박남춘, 유성엽, 정청래, 이낙연이다. 주요내용은 사할린 영주귀국자 대상확대(1945 년 8월 15일 이전 출생자에서1945 년 9월 2일 이전 출생자로, 배우자

및 직계비속까지: 본인 + 배우자, 자식 1 인 + 배우자); 사할린 동포의 적립금 상환을 위해 외교적 노력: 국무총리산하 사할린동포지원위원회 신설

(영주귀국, 정착지원 담당), 기념사업 등을 위한 사할린동포지원재단 설립, 국내 유족(배우자)에 대한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지원이다.

한편 한국 정부는 사할린 한인 문제에 대하여 조국을 그리워한 수많은 동포들에 대하여 지독하게 무관심했고, 반일, 반공의 문제로 사할린 한인 문제를

이용하면서 정권의 정당성 위기를 극복하는데 사용했을 뿐이었다. 더욱이 사할린 한인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고, 따라서 일본이 먼저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면 한국도 그에 상응하여 나선다는 수동적인 입장을 견지했고, 또한 일본이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책임은 법적 책임이

아니라 역사적, 도덕적, 인도적 책임에 불과하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수용하여 특별히 일본에게 법적 책임의 추궁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가졌다.

이러한 방침은 현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 정부는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업무처리지침"을 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이었다. 일본 정부가

제시한 한∙일 정부를 주체로 한 것이 아닌 적십자사라는 민간기구를 통하여 "영주귀국사업"을 실시하자는 제안을 수용했고, 따라서 일본의 조치는

사할린 한인에 대한 "법적 책임"은 커녕 "역사적, 도덕적, 인도적 책임"도 아닌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일제 당시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던 한인들의 기록을 한국 정부가 2년전 확인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직접 러시아 측과의 협상 끝에 관련 기록

사본을 전달받았는데, 당시 사할린 한인들이 항일운동을 벌인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당시 일제가 작성한 것으로, 한인들의 출신지역과 강제노역에

시달린 탄광 등 근무지, 임금 내역 등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 심지어 개인의 용모와 성격, 이념적 성향까지도 꼼꼼히 기록돼 있다. 또 작업장에서

달아나 지명수배된 기록도 있는데, 이는 고통스런 강제노동을 견디다 못해 도주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다 쫓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강압적 조선 통치에

항의하는 성명도 발견돼 당시 사할린에서도 항일운동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기록의 존재가 확인됨에 따라 적어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할린

한인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과 보상을 받을 길을 열 수 있다. 이 기록을 확보할 경우 강제동원 피해사실 규명은 물론 보상 문제도 길이 열리게 된다.

이 보도에 대해 외교부는 적절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국내 거주 사할린 한인들이 북한 이탈주민과 다문화 정책지원 대상에서도 제외, 역사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정당한 대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충남도의회 장기승 의원은 충남도의회 제265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 국내거주 사할린 한인들은 일제강점기 어린 나이에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됐다가 노년기에 그리운 모국을 찾아 정착했지만 여러가지 생활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내에 사할린 한인이 4115명이 정착했고

충남에는 328명이 거주하고 있다”며 “국내거주 사할린 한인에 대한 지원을 위해 정부는 특별법 제정을, 충남도는 조례제정과 함께 전담공무원을 지정해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 의원은 또 “이들은 주거의 경우 13평 미만의 좁은 임대아파트에서 2인 기준의 입주조건을 맞추기 위해 법적재혼

또는 사실혼을 하거나 동거가구를 구성해 생활하다 보니 서로 갈등이 빈번히 발생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빈곤, 제한된 수준의 한국어 구사로 의사소통의

불편함, 가족이산으로 인한 외로움, 고령화로 인한 건강악화 등 많은 불편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북한 이탈주민과 다문화

정책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됐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정당한 대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충남은 독립기념관이 소재하고 있는

곳으로 많은 독립운동가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가 살고 있는 지역이고 사할린 한인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박승의’ 선생과 ‘공노원’

선생의 연고지로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타시도의 경우 이미 사할린 한인에 대한 각종 행정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충남도는

전담공무원이 없고 지원조례도 없으며 사할린이 정착한 도내 시군간의 연계를 위한 광역적 역할 조차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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