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의: 소련시대의 사할린 한인의 생활 (계속) - стр.5

6)남겨진문제들

 

(1) 일본의사할린한인에대한귀환책임과관련하여

 

일본은 식민지 지배와 전후 처리문제에서 만큼은 철저히 이중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기대어 전쟁책임과 식민지 과거청산에

관한 면죄부를 얻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이미 전후보상과 과거청산은 마무리 됐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65년 한일기본협정의 체결과정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던 한국 식민지화가 합법적이었다는 생각과 그 이후의 법적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는 주장은 모두 일맥상통하는

제국주의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할린 문제는 한일협정에서 논의 된 바 없는 미청산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성립할 수 없는 가정이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패망 이전, 사할린 한인이 아직 일본 국민으로 인정되고 있던 시기(1946–1949)에 귀환작전에서 그들을 배제했던 사실이나,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일본국적을 박탈한다고 결정하기 이전에 그들이 보인 반인륜적 불법적 행위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남게 된다.

더구나 일본군 헌병대나 일부 민간인들에 의한 학살사건 등의 사건도 일본 정부의 책임이 크다. 최근의 국제법적 흐름이나 식민주의 청산의 흐름에서도

일본의 전후 처리 문제나 식민지 인식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 국제적 공론이라는 측면에서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요구된다.

그동안 사할린 한인의 귀환에 대하여 일본은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이들의 귀환에 대하여 "지원"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한국도 일본이 1차적인

책임자라는 기조에서 일본의 조치가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정도의 조치를 취하는 상태이다. 일본 정부는 그 동안 사할린 한인의 모국방문사업

(일시방문, 영주귀국, 영주귀국자 사할린 역방문)에 대해 약 700억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지원"으로 이제 할 만큼 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고, 한국 정부도 이러한 일본 정부에 대하여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할린 한인의 영주귀국문제는 이제는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1945년 종전 당시 43,000명의 한인이 사할린에 억류됐다고 하는데,

1 세의 90% 이상이 사망했고, 그 나머지가 생존해 있다. 아직도 한국으로의 영주귀국을 희망하는 사할린 한인 1세가 남아 있으며, 현실적인 이유로

한국으로의 영주귀국을 포기하고 사할린에 그대로 잔류하고자 하는 사할린1세도 있다. 이들은 그동안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가 이들에게 영주귀국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낸 결과 이제는 고령화되어 건강이 따르지 못하게 된 사람들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영주귀국의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사망한 사람도 있다. 따라서 사할린 한인의 영주귀국문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조속히 실현해야 할 사업"이다.

사할린 한인의 귀환책임의 문제는 시간이 진행되면서 다시 2가지로 발전됐다.

첫째는 종전 당시와 같이 귀환실현책임의 문제이다. 그 동안 일본과 한국이 양국 적십자사를 통한 모국방문사업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둘째는 귀환실현책임 불이행에 대한 책임문제이다. 즉 사할린 한인을 적시에 귀환시켜야 했어야 하는데, 현재는 사할린 한인 4세가 출생한지도 20년

정도가 됐고, 이미 90%이상의 1세대가 사망했다. 따라서 이제는 이들에 대한 귀환실현책임 불이행에 대한 책임이 새로이 성립됐다고 할 것이다.

아직은 이 두 번째 책임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제시된 바가 없다. 이 두 번째 책임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에 사할린 한인의 영주귀국문제가

조속히 그리고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2) 강제동원중의개인적재산청구권과관련하여

 

사할린에 강제동원 됐던 한인들은 일본의 전시체제하에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은행 또는 우체국 저금, 국채 등의 매입, 보험료의 납입 등의 여러

가지 명분으로 강제로 예치시키게 됐다. 이 중에서 우편저금에 대하여 2007 년 9 월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사할린잔류한인·조선인 우편저금 등

보상청구소송"이 제기됐다. 이 소송은 당시 일본 우편국(우정공사) 저금과 간이생명보험 불입금에 대한 청구소송이다. 이를 주도한 다가키 겐이치

일본변호사는 이 소송은 궁극적으로 일본 사법부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여론형성을 통해 정치쟁점화하여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로부터 일정한 자금의 출연을 통하여 기금을 조성하여 사할린 한인의 한국에의 영주귀국과 정착 사업, 그리고 사할린 잔류자에 대한 지원사업 등에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소송에서 대상이 됐던 우편저금과 간이생명보험은 당시 일본이 임금을 강제로 예치한 형태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일본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일괄적으로 해결해야 할 성격이라 하겠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 과거사에 있어서 재산권문제는

기본적으로 1965 년 소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해결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한국 정부는 군대위안부,

원폭피해자, 사할린 한인 문제는 2005 년부터 1965 년 한·일 청구권협정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기본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는 2011 년 8 월 군대위안부와 원폭피해자의 재산권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라는 기본권의 중대한 침해가능성, 구제의

절박성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의 그동안 행태가 위헌임을 판시하며 분쟁해결에 한국 정부가 적극 나서도록 촉구했다. 이와 더불어, 2012년 5월

대법원은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의 한국인 피징용자 그룹이 제기한 소송의 최종판결에서, 1965년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피고 기업은

이들의 미지불 임금을 지불할 의무가 있고,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강제징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된 조선인 노동자 임금 미지불 공탁금 내역서ⓒ 이국언]

 

이처럼 사할린 한인의 문제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와 그에 따른 문제들과 함께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강제동원과 미귀환이라는 두 가지

문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문제이며, 따라서 반드시 일본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임과 동시에 이를 방치해 온 한국

정부 또한 그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인 것이다. 한국 국회 역시 그 동안 미온적이었던 태도를 반성하고 사할린 한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의 분단, 전쟁, 산업화라는 고된 시절을 지내면서 잠시 망각하고 있었던 한민족의 아픈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아픔의 치유를 위해 늦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그 첫 걸음은 그동안 제정되지 못했던 "사할린 한인 지원 특별법"의 제정이

될 것이다.

사할린 한인 영주귀국자 가구 지원 한계 혹은 문제 영주귀국자 지원 사업의 내용이나 방식 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과 그 해결 방안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영주귀국자 대상자는 "1945.8.15 해방 당시 사할린 거주 또는 출생자",

◦인도주의 차원에서 2008 년부터 1 세의 배우자와 장애자녀도 동반귀국 허용,

◦영주귀국시 한 세대는 2–3 인으로 구성, 1 인 거주 불가,

– 남․남, 여․여 동성 거주, 또는 남․녀 부부거주 형식,

◦영주귀국자 대상이 되기 위해 형식적으로 부부가 되거나 동성(여․여) 짝을 맞추어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 성격차이로 갈등과 충돌이 잦음,

◦대부분 자녀와 손자․손녀를 러시아에 두고 왔으니 그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큼,

◦경제적인 측면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로서 정부지원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지원금이 충분치 않음,

◦사할린을 자주 방문하지 못하는 것, 경제적 문제가 가장 불편함,

◦이런 점을 해소하기 위해 연금지원과 가족 친지 방문기회 확대(2001 년부터 사할린 친지방문을 실시하여 2010 년까지 3,484 명),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2 년 만에 한 번씩 무료로 러시아로 갈 수 있는 기간이 영주귀국자들에게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학생들, 대학생들의 러시아

지역 방학기간은 6 월 1 일부터 8 월 31 일까지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녀, 손자녀를 방문하는 기간은 방학기간이어야 한다. 9–10 월에 왜 갔다

와야 하는지? 영주자들은 한국 여름 날씨가 매우 더울 때, 사할린에서 자녀∙손자들이 집에 있을 때 가서 가족과 함께 있으려는 소망을 이루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영주자들이 필요할 때 갔다 올 수 있게 표 값을 주면 해결될 문제가 아닌지 궁금하다. 정부차원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역방문 지원 사업 방식 개선 방안으로는 지원 1 세 한인 당사자만 지원되고, 그 배우자인 8.15 이후 출생자, 비한인 배우자는 지원되지 않으므로,

비지원 배우자 항공권 비용부담으로 인해 부부가 함께 역방문을 포기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금의 특정 항공사 티켓(아시아나)

구입 대신, 역방문 용도 일정액 계좌입금 혹은 전자바우처 형태로 비용 지급을 희망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보다 저렴한 항공사 이용으로 배우자

항공료 추가 부담분이 줄어들어 경제적 이유로 역방문을 포기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한 역방문 시기 역시 가족 상황에 맞추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더 큰 기쁨을 맛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문희망자가 원하는 시기에 그리고 가급적 배우자가 같이 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국적기 이용이 원칙이라면, 아시아나 티켓을 사할린 항공 수준으로 할인되도록 정부가 협상, 또는 지원을 통해 가급적 배우자도 같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할린 동포 관련 예산은 매년 5월경 한일 적십자 회의에서 결정, 일본 적십자의 예산집행으로 한국 적십자에 예산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역방문

등의 사업실행이 어려운 것이 현실태이다.

◦영주자들 중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건강 상태가 괜찮은 어르신들에게는 할 만한 일을 줬으면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살 것같다.

◦또 일을 하면 차별 없이 현지인들만큼 주면 좋겠다. 현재 3–4 세대가 이주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 외국인으로서

차별받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아이들이 차별을 모르게 다닐 수 있게 어른들이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문화, 여성단체에서 해결하도록

도와주면 한국에서 계속 살면서 공부할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신적 타격을 덜 받으면 나라에도 좋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사할린 한인 동포의 자녀․손자가 조부모를 찾는데 왕복 항공료를 지원,

◦한국어 교육 방안 실시,

◦체류동안 한국 문화와 역사 탐방을 지원,

◦사할린 3–4세대가 한국어교육을 받고,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한국사회를 이해하면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지역사회가

할일 일이라고 본다. 한국 많은 도시에 사할린 영주귀국자들이 거주하고 있고, 사할린에서 이미 한국어교육을 하다 영주귀국한 선생들이 있다.

국내 여성, 다문화지원센터들이 전 사할린 한국어교사들, 다문화강사들과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작성해서 연수기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서로

배워가면서 3–4 세대를 교육 시키는 것이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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