Выставка сахалинского художника в Москве

15 июля в Москве состоялось открытие выставки сахалинского художника Дю Мен Су (주명수).

Художник представил экспозицию «Безмолвное очарование Сахалина». Выставка организована Управлением культуры и молодежной политики ЮЗАО в галерее «Листок», Министерством культуры Сахалинской области.

Наш земляк 주명수 окончил Иркутское училище искусств, работал в Кемерово после окончания училища и с 1980г. живет на Сахалине, вначале в родном Корсакове, затем в Южно-Сахалинске.

С теплом вспоминает бывшего губернатора Фархутдинова И., который оказал всемерную поддержку его творчеству.

На выставке представлены 20 картин, написанные на бумаге акриловой краской, написанные  в современном стиле и 25 фотографики. Представлены также картины, написанные в корейском национальном стиле.

Выставка проходит до 25 августа, приглашаем посетить и ознакомиться с творчеством нашего земляка.

Ниже фоторепортаж с выставки. Использованы  фото 주명수,  галереи listok-gallery.ru

и автора заметки – администратора сайта Ким ТхеИк,   Этот адрес электронной почты защищен от спам-ботов. У вас должен быть включен JavaScript для просмотра.

 

 

 

 

 

 

 

 

 

 

 

 

 

 

 

 

 

 

 

 

 

 

 

 

 

 

 

 

 

 

 

 

 

 

 

 

 

 

 

 

 

 

 

 

 

 

 

 

 

 

 

 

 

 

 

 

 

 

 

 

 

 

 

 

 

 

 

 

 

 

 

 

 

 

 

 

 

 

 

 

 

 

 

 

 

 

 

 

 

 

 

 

문종기 - председатель об-ва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г. Красногорск

Статья из газеты 새고려신문, номер от 5 июля 2013г.

О сахалинском обществе разделенных семей

От администратора: хочу выразить признательность первому председателю сахалинского общества разделенных семей 서연준,  председателю об-ва периода 1994-2004гг 김명열 за предоставленный материал. Ныне оба проживают в Корее, хочется пожелать им здоровья и выразить благодарность за многие годы работы по возвращению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на родину.

Для открытия страницы о 사할린이상가족회 кликните выделенную строку ниже и дождитесь загрузки страницы.

20 лет сахалинской общественной организации разделенных семей

박종철 - Председатель общества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г.Южно-Сахалинск

Статья из газеты 새고려신문, номер от 21 июня 2013г.

 

О Такаки Кэнети

От администратора
Изучая историю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сталкиваешься с поразительным фактом,
который непросто сразу то и воспринять. Речь о том, что по вине императорской Японии,
мобилизованные на Сахалин корейцы на долгие 50 лет оказались запертыми на чужой
для них земле. Это с одной стороны, но неоспоримым фактом является и то, что многие
японцы в 70-80-е годы встали на защиту интересов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и приняли
активное участие в движении за восстановление прав корейцев на возвращение на родину.
Среди них было много депутатов, юристов. Они фактически признали вину Японии
за действия в отношении корейцев, взяли на себя организацию встреч с родственниками
на территории Японии до установления дипломатических отношений между Кореей и СССР.
 И в том, что в конечном итоге правительство Японии начало финансирование переселения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на постоянное жительство в Корею есть неоспоримый вклад японских граждан.
Среди активных участников-японцев в движении за восстановление прав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известный японский адвокат Такаки Кэнети.
Ниже публикуется статья 성점모 선생님 об этом замечательном человеке.   

В ближайщее время собираюсь сделать перевод статьи и разместить фотографии Такаки Кэнети.

침해된 권리의 회복을 위해

(우리를 도와 준 타카기 켄이치 일본 변호사에 대하여)

사할린한인들의 영주귀국사업은 우선 한국, 러시아(소련),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많은 민간단체와 사람들의 활동으로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 번에 “사할린
귀환재일한인회” 박노학 회장의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오늘은 일본에서
우리의 영주귀국사업을 힘껏 도와준 타카기 켄이치 변호사의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하련다.
1973년에 “사할린귀환 재일한국인 회”(박노학 회장)가 일본 변호사연합회에 사할린잔류
 한인들의 인권구재신청을 했으며 1975년에는 4명의 사할린잔류  한인들이 일본정부를
피고로하는 귀국청구재판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했다.
그리하여 “사할린잔류자귀환청구소송변호단”이 설립되었다. 타카기 변호사는
이 변호단의 사무국장으로써 출발하였는바 여론제기, 역사적 사실의 파악,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등으로 전후 사할린잔류 한인들의 귀향, 가족들과의 재회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해결의 징후도 보이지 않았던 고달픈 기간이 10년정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참 1987년에 사할린한인들의 문제해결을 지원하기 위하여 170명의 일본국회의원들이
모여 “사할린잔류한국ㆍ 조선인문제의원간담회”를 설립하였다. 타카기 변호사는 간담회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우선 간담회를 발족시키는데 노력했으며 일본 정부에
사할린한인 영주귀국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도록 하는데 있어서 변호사는 국제정치의
비정한 논리에 멘 먼저 희생이 되어온 것이 사할린한인들이며 그래서 유효한 정치적
어프로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의원간담회는 고르바쵸브 체제의 페레스토로이카에 의한 변화를 정확하게 잡아 여러가지 루트에
의한 어프로치를 하고 소련에서 출국규칙의 완화를 확실하게 앞당기게 하였다.     
1988년에는 “사할린잔류한인지원회”를 설립하여 타카기 변호사는 그 대표로 되었다.
이 해부터 한국 친족들과의 재회를 위한 사할린한인들의 일본방문이 증가되었다.
타카기 변호사는 우선 사할린손님들을 받아드리는 조직을 발족시켰다.
그리하여 88년부터 90년까지 자기의 이름으로 근 1000명의 사할린한인들을 초청하여 도쿄
시내3곳의 아파트를 준비해 놓고 한국의 가족을 오게 하여 2~3주 체재로 재회하도록 돌보아주었다.
때로는 한 번에 50명이나 사할린에서 온 일도 있었다. 물론 그들을 돌봐주고 도쿄관광까지 시켜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의 가족과 40년만의 그 모든 재회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고 타카기
변호사는 말한다.  90년부터는 이 재회사업은 일본정부가 하게 되었다.
타카기 변호사의 활동은 결코 허사로 되지 않았다. 1994년 일본정부는 32억엔을 사할린한인들을 위한
아파트건설비로 예산하였다. 다음 인천 요양원(복지관), 사할린에 문화센터가 건설되었는데 여기에도
타카기 변호사는 한 몫 당당히 기여하였다.
타카기 변호사는 한국과 소련에도 여러 번이나 가서 양국정부와 적십자사의 협력과 이해를 얻었고
중ㆍ소이산가족회의 총회에도 참석하고 이산가족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피부로 느꼈으며 할머니가
넥타이나 손을 꼭 잡고 그 흐르는 감정을 울리는 호소를 받고 해결로의 구체적인 노력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 한다.   
타카기 변호사는 “애타게 기다리는 할머니들”(1987), “재한피폭자문제를 생각한다”,
“사할린과 일본의 전후책임”(1990), “종군위안부와 전후보상”(1993), “전후보상의 논리”(1994),
“지금 왜 전후보상인가”(2001) 등 책을 저작했는데 이 서적들도 사할린한인들의 문제해결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은 국가총동원법에 의거하여 모집(1939.9~1942.2), 관알선(1942.2~1944.9),
징용(1944.9~패전) 등 형태로 한반도에서 많은 청년들을 사할린으로 강제연행하였다.
징용된 사람들은 사할린에서 주로 탄광과 군사시설 건설장에서 강제노동을 당했다.
그들은 육체적ㆍ정신적 고통을 당했을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마저 상실 당했으며 강제노동의
대가로 받게 된 보잘것 없는 노임마저 강제로 저금하게 되었다.
전후 사할린에서는 그 저금을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날까지 일본은행에 있는 그 저금을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전쟁 때는 전쟁비용으로, 지금은 자국경제발전에 이용하고 있다.
물론 저금한 본인들 다수는 사망하고 없다.
그러나 그 돈은 반드시 후손이 찾아야 할 것이다. 현시 이 돈을 찾기 위한 운동에 타카기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마음껏 사할린동포를 도와주고 있는 타카기 켄이치 변호사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대한민국외교부장관의 감사장(1987.6), 국민훈장 모란장 (1989.12)으로 표창하였다.

                                                성 점 모
                                  전국 사할린영주귀국동포단체 협의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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