Открытие бюста 박노학 в Ансане

27.10.2013г. на сайте была размещена первая статья о (고)박노학회장– "30 лет жизни, посвященные возвращению на родину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написанная 성점모.

Мне удалось найти в Интернете информацию о сыне 박노학– 박창규, с ним встретился 박승의, автор многих статей на сайте.  박승의 поддержал инициативу сахалинца 이태섭, жителя г.Осан, что необходимо воздать должное  деятельности 박노학 и они собрали группу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которые поддержали идею о необходимости широкого освещения деятельности 박노학 и увековечения его памяти. Так в  Корее была создана инициативная группа по увековечению памяти 박노학, которая приняла решение создать стенд 박노학в музее일제강제동원역사기념관, строительство которого в 부산 еще продолжается.  Деятельность группы дала толчок и к принятию решения  Координационного совета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в Корее по  установлению бронзового бюста в Ансане, 고향마을.

8 ноября 2014 г. в 고향마을 состоялась церемония открытия бюста 박노학. Ниже статья из газеты 새고려신문 об этом событии.

Материалы, посвященные 박노학, собраны в разделе сайта "Статьи о 박노학"

박노학과 이희팔

 

 

 

 

 

 

 

«박노학» 시리즈 3

박노학과 이희팔

박승의

故박노학회장기념사업추진위원회장

 

 

О деятельности 박노학 회장 в новой книге японских авторов

Автор многочисленных публикаций об истории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성점모 선생님 прислал статью, написанную как отзыв по недавно изданной в Японии книге о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ах.

Выдержки из книги подтверждают выдающуюся роль 박노학 회장 в многолетней деятельности по возвращению сахалинцев на родину. К сожалению, многие сахалинцы знают о деятельности по возвращению на родину в 90-е годы и позднее. 박노학 회장 начал свою деятельность в 50-е годы в Японии и продолжал ее до самой смерти в 1988.03.17. Выдающаяся роль 박노학 회장 не оценена в полной мере сахалинскими корейцами, которые благодаря и его многолетней деятельности
получали письма из Кореи, в конце 80-х и начале 90-х встретились с родственниками в Японии и потом переехали в Корею на постоянное жительство. Эта статья, основанная на вышедшей недавно книге группы японских авторов, еще раз рассказывает о роли 박노학 회장 в движении за возвращении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на родину.

 

                       사실은 왜곡되지 말아야 한다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운동에 대하여)

 

사할린동포의 영주귀국운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누가 시작했는가? 이 사실에 대하여 의견도 많고 주장도 다양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실이 왜곡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들의 영주귀국운동에 대한 사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의견을 우겨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북동아세아의 코리안•디아스포라. 사할린을 중심으로 하여”란 책이 일어로 발간되었다.

이 책은 대학교 교수그룹이 사할린한인들의 역사를 중심으로 북동아세아의 한인들의 역사를 연구한 결과의 발표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책에서 사할린한인들의 영주귀국운동에 대한 부분만 오늘 번역하여 소개 하련다.

책에 의하면 사할린귀환한국인회 박노학 회장은 한일 국교교섭이 전진되자 한일회담(1965년)에서

사할린잔류조선인귀환문제를 의정에 넣어줄 것을 양국에 계속 사정하였다. 그러나 귀환문제는 뒤로 미루어지고 한일조약은

체결되었으니 박노학 회장은 크게 분개했다 한다.

 

번역문: 박노학 회장의 수기에 의하면 사할린잔류조선인문제가 한일교섭의 과정서 무시된 것에 대하여 “사할린문제를

의정에 넣으면 한일조약체결이 늦어지기에 뒤로 미루었다”는 회답을 한국대사관에서 들었다. 반대로 (일본)외무성은

“이번 일한회담에서 한국정부는 청구권을 포기했다. 그 조건 중에는 사할린문제도 포함되어있으니 모든 것이 해결됐다”고 한다”.

이렇게 한일의 말은 분명히 엇갈리고 있으며 사할린조선인의 귀환문제를 해결할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

한국을 방문한 박노학 회장은 주한 일본대사관에 가서 진정서를 냈을 때 참사관은 “일한회담에서 한 줄이라도 사할린한인문제가

가입되었더라면 후의 교섭에 도움됐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사할린조선인귀환문제는 한일 회담에서 제거됨으로 그 결말은 우리사할린동포들의 운명을 결정지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박노학 회장은 그것으로 낙심하지 않았다.

 

번역문: “일본에서 사할린과 한국간의 서신을 중계하고 있은 사할린귀환한국인회 (박노학 회장)는 65년말부터 귀환희망자의 편지를

모우게 된다. 그리하여 66년 부터는 귀환을 희망하는 수많은 편지가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사할린귀환 한국인 회는  그것을 근본으로

하여 근 7000명의 귀환희망자명부를 작성하였다. 이리하여 65~66년은 사할린귀환한국인회의 사할린잔류조선인의 귀환요구운동의

정상으로 되었다. 66년에 사할린귀환한국인회(박노학 회장)가 일본주재 한국대사관에 진정서를 낸 것이 시작으로 일본정부에 소련과

교섭을 할 것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한국외무부도 전해 말에 한국적십자사를 통하여 이미 사할린귀환한국인회의 진정서를 받고 있었다.

일본도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어 그 해 3월에 한국측이 귀국희망자 전원을 맡아서 소요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조건을 수락하면

소련정부와 교섭할 용의가 있다고 공식 표명하였다.”

 

이와 같은 사할린귀환한국인회(박노학 회장)의 활동에 의하여 한일 양국은 문제를 공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방식에 대해서는 양자의 인식의 차이는 너무 컸다. 한국입장은, 사할린잔류조선인의 구출은 일본에 일차적 책임이 있기에

우선 일본에 상륙한 후 희망하는 정착지를 결정시키자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사할린조선인은 재일한국인과 구별될 일은 없고,

사할린이 일본영토라면 재일한국인의 법적지위협정에 의해 일본에 영주할 권리가 부여되어있다고 간주 되어 사할린귀환자는 일본에

정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된다. 귀환한 사람을 상당기간 일본에 정착시켜 그 동안 귀환자의 사상 및 신원조사를 하여 일본에의 정착을

유도한다는 교섭지침을 일본주재 (한국)대사에게 전했다. 한국이 사할린잔류조선인의 일본으로의 귀환을 전제로 한 것도 소련이 한국으로의

출국을 인증치 않을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그런대로의 이치로는 되었다. 사할린귀환한국인회(박노학 회장)는 일본 정계에 진정서를 보내고

서명운동도 전개했다. 또한 귀환희망자 7000명의 명부를 작성하여 국제위원회와 한일 양 정부에도 보냈다. 재일대한민국거류민단도

“사할린억류한국인문제”에 관계하게 되어 공동으로 진정서를 보내기도 했다. 정치수준에서는 주일한국대사관 공사가 (일본)외무성

아시아국을 방문하여 (사할린교포의)귀환촉진을 요청했다. 그리하여 한국정부는 “사할린교포귀환”과 “북송중지”를 위하여 일본 및 국제위원회에

초당파 사절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상의 글만 봐도 사할린동포영주귀국운동을 누가 시작했으며 다음 어떻게 발전되어나갔는가를 명백히 알 수 있다. 사할린에서 한국으로

영주귀국한 많은 사람들은 귀환운동을 누가 시작했으며 어떻게 해결되어나갔는가 하는 진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하여

지금도 착각하고 있다. 그러면 책 내용의 번역문을 계속 소개하겠다.

 

번역문: “1969년7월4일, 한국외무부는 주한일본대사관을 통하여 (박노학 회장이 작성한)7000명의귀국희망자 명부를 공식적으로

일본정부에 전했는데 일본은 그사실을 소련측에 통지했다. 결과 (일본)국회서도 사할린잔류조선인문제가   “일본에는 직접 관계없다”고

하면서도 “인도적 책임”이라는 시점에서 대책수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외무상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자세를 보였으며 일본서도

이 문제는 벌서 피할 수 없는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오랜 시간이 걸려서 문제는 조금씩 해결되어나갔다).

결과 1994년 7월 23일 방한한 무라야마 일본수상과김영삼 대통령이 회담하여 사할린잔류 한국인문제가 심의되었다. 그리하여 일본수상의

귀국 후 일본의 지원책을 결정하게 되어 약 5억원의 (인천)요양원, 그리고 안산 집단단지를 위한 27억엔이 예산되었다”.

 

이상 일본 책 내용을 소개했는데 지금까지 오해를 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사실을 바로 이해하게 되었다면 감사하겠다.

안산시 고향마을에는 김도영, 김세진 씨를 비롯하여 6~7명이 이 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빌려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성 점 모

   안산시 고향마을 노인회 고문

 

 

박노학과 도만상

Пак Но Хак и То Ман Сан

(О судьбе семьи То Ман Сана и других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депортированных в 1977 г. в КНДР)

Пак Сын Ы

Председатель «Общества по увековечению памяти Пак Но Хака»

Сбор средств на увековечение памяти 박노학

Уважаемые соотечественники!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около 4000 сахалинских корейцев репатриировались на историческую родину. Десятки тысяч сахалинские корейцы посетили родственников в Корее.

Начало этому было положено бескорыстным трудом Пак Но Хака и его единомышленников.

Но, к сожалению, его титанический труд незаслуженно забыт.

Для восстановления исторической справедливости по отношению к Пак Но Хаку "Общественная организация по увековечению памяти Пак Но Хака" проводит кампанию по сбору средств на установку памятника Пак Но Хаку.

 Средства можно перечислить на расчетный счет № 317–0006–2527–51 в банке Нонхёб (РК)

 

Получатель: KIN (Park Seung Ui)

NongHyup bank (Respublica of Korea)

Счет № 317–0006–2527–51

Swife code: NACFKRSEXXX 

 KIN (Park Seung Ui)

Tel.: h.p. 010-6398-8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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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редседатель "Общественная организация по увековечению памяти Пак Но Хака"

 

                                                                                                          Пак Сын Ы

박노학회장의동상설치에동참

 

사할린 한인의 영주귀국이 실현된 데는 故 박노학 선생님의 희생과 노력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사할린 한인의 역사를 올바로 조명하기 위해서 잊힌 박 선생님을 다시 한번 기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현재 건설중인 부산 기념관내에 故 박노학 회장의 동상을 설치하고자 하오니 동포 여러분들이

"박노학회장의동상설치돕기운동"에 작은 성의라도 후원해주셔서 자라나는 우리 후손들이

사할린 한인들의 아픈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세요.

후원 안내:

 - 은행명/계좌번호: 농협은행 / 317-0006-2527-51                    

NongHyup bank / 317-0006-2527-51, swift code: NACFKRSEXXX    

 - 예금주: KIN(지구촌동포연대) 박승의

문의 전화: 휴대폰: 010 – 6398 – 8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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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노학 회장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박승의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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